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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tude flows

Etc/Novel

2023. 10. 27.

COC 7판 팬메이드 시나리오
피의자 A: 사람은 무엇으로 죽는가? 스포일러  https://posty.pe/3c53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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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악몽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누군가의 잘린 목이 품에 남아있었다. 나는 그것의 머리 아래가 존재하지 않음을 감사히 여기며, 혈흔 속에서 두 번째 잠에 빠져들었다.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거실 테이블 위에 저녁 식사 대신 누군가의 잘린 목이 올려져 있었다. 정확히는 내 몸에서 분리된 듯한, 나와 완전히 같은 얼굴을 한 육신의 파편이. 절단면으로부터 불거져 나온 뼛조각이라거나 미처 감기지 못한 두 눈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종이 포장지에 바짝 말라붙은 모습이라거나. 시선을 억지로 돌리고 동거인의 이름을 불렀다. 부엌에서 인덕션 전원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미안. 치우는 걸 깜빡했어.
시릴은 오른손에 부엌칼을 왼손에 우유병을 들고서, 그렇게 말했다. 크림 스프 향기가 났다.
무슨 서비스인 줄 알았네.
지금 치우고 올게. 음, 또 버릴 거 있어?
그렇게 재활용 쓰레기처럼 이야기하지 말아 줄래?
한동안 웨스트본에 버렸으니까 이제 템스강에 가볼까 하는데.
듣고 있냐?
단테, 그것보다 좋은 소식이 있어.
그래 어디 얼마나 좋은 뉴스인지 들어볼까.
머리밖에 없더라고. (뭐?) 그러니까. 가끔은 잘린 목만 발생하는 것 같아. 오늘은 하나하나 썰어서 옮길 필요가 없다는 거지. 넌 키가 크잖니……아무튼. 가서 식사해. 간이 좀 싱겁게 된 것 같지만.
너무나도 고맙지만 필요 없어. 그거 들고 다니다가 발각되지만 마라.
걱정하지 마.

경쾌한 발소리가 나고 현관문이 열리고, 닫혔다. 나는 욕실로 가서, 싱크대에 쓰러지듯 기대고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상처 하나 없는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제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 따위 진작 없어져 버렸을지도 모르고. 타일 틈에 파고들어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을 밟으며 다시 부엌으로 향했고 북유럽풍 식기에 가지런히 담긴 스프와 빵을 마주하고. 토기를 참지 못했다. 손에 잡히는 천으로 입가를 닦았다. 하지만 그 손수건에도 정체 모를 살덩어리와 기름이 엉겨 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드러누워, 천장 벽지의 무늬를 하나, 둘, 세다가. 문득 단 한 번도 고려해 보지 않은 방법을 떠올려 냈다. 시릴 메이스필드를 죽이면, 저주도 사라지고 작금의 상황도 해결되잖아?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누군가 귀에 대고 속삭이듯 익숙한 목소리로, 뇌리에 문장이 흘러들어왔다. 그럼 그 전에 그 많은 피를 대체 뭐로 청소해 왔는지부터 물어봐야겠네. 빌어먹을……. 
시트러스가 기억에 스쳤다. 무거운 머리를 돌리자마자, 어느샌가 침대에 걸터앉은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대체 언제 들어온 거야? 노크 좀 해.
했는데 안 듣길래.
벌써 다녀왔어?
…….
저녁 이야기하는 거면 지금 정말 속이 안 좋아서.
알아.
직후, 나는 아무런 예고 없이 상대의 어깨를 움켜쥐고 저주하듯이 뱉었다. 수없이 반복했을 문장을.
말해. 
그는 입을 다물고 웃는다. 먹먹한 침묵이 이어지고, 다음 순간 시릴은 대답이 되지 않는 소릴 지껄였다. 그런데 너는 영혼이 뭐라고 생각해?
봐, 네 정신은 점점 좀먹히고 있어. 병원 신세 지기 전에 털어놓으라고.
단테, 나는 영혼이 현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나였던 것, 의 마음이나 전언 같은 걸 타인이 회상할 수 있다면 말이지, 우리는 타인의 영혼을 수억 개나 머릿속에 품고 살아가는 거야. 언제까지고.
요점이 뭔데?
살아있는 건 참 행복한 일이네, 싶어져서. 그리고,
─상대는 그대로 슥 하고 희미해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긴 악몽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누군가의 잘린 목이 품에 남아있었다. 나는 그것의 머리 아래가 존재하지 않음을 감사히 여기며, 혈흔 속에서 두 번째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노크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비좁고 어두운 장소에 다른 물건들과 함께 구겨진 채 잠들어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몸을 토막 낸 살덩어리들이라는 사실을, 벽장 문틈으로 스며드는 빛을 통해 깨닫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익숙하고 아늑한 피의 감촉 속에서 나는 빠져나온다. 
자살 희망자는 찾았어?
아니, 아직.
더럽혀진 카펫을 붙잡고 무릎으로 기며 현상 속에서 발버둥친다. 상대는 턴테이블 위의 앨범에 바늘을 올려놓는다. 나는 선율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무덤의 향에 헌화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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