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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일장춘몽 (아이나나/이오리쿠)

Etc/Novel

2023. 12. 1.

 

진도: 애니 3기 파트2 끝까지
주의사항: 투신자살(전철)/자살 목격 트라우마 관련 표현 있음. 무엇이든 괜찮으신 분만 읽어주세요.

쓰면서 들었던 곡: 
熱異常 - いよわ
https://youtu.be/b2NTglk9tvI?si=kv-qGgwBxlDUMs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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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평일 오전 6시. 이즈미 이오리는 홀로 숙소에서 눈을 떴다. 그를 제외한 모든 멤버에게 이른 새벽부터 일정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샤워 중에, 한 번 쓸 분량밖에 남지 않은 바디워시와 마주쳤다. 먼저 새 제품을 꺼내 선반에 놓았다. 병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 흔들어서 거품을 냈다. 톡, 하고 기포 터지는 소리가 귓가에서 몇 번 울렸다. 수증기로 탁해진 거울을 손바닥으로 닦고 자신을 바라보았다. 어떠한 변화도 없음을 확인하고 욕실 밖으로 나섰다. 간단히 식사하고,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에 현관을 넘었다. 교복 상의에 넣어둔 이어폰을 만지작거리며, 착용하지는 않고,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쯤에는 밤의 꿈 따위 잊어버리고 있었다. 


場春夢


숙소에서 빠져나와 익숙한 사거리를 지났다. 행인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밝은 톤으로 IDOLiSH7의 활동을 호평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오리는 아무렇지 않게 몸을 돌려 근처 골목으로 향했다. 낡은 악기상이 있던 건물의 1층에 패밀리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잔뜩 쌓여 있던 기자재가 치워지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길이 지난주에 개방된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방금까지 몸에 익은 경로를 따라가고 있었을 뿐 이 골목을 지나면 전철역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래서 멈추지 않고, 등 뒤로 그 사람의 이름이 멀어지고─시야는 마천루가 드리운 그림자로 물든다.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물기를 머금은 백색 하늘이, 길게 조각난 채 그를 내려다본다.
햇빛 향기를 맡고 싶었다.
이오리는 호흡하는 빈도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역의 플랫폼을 찾았다. 승강장은 한산했다. 길이 달라진 탓에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것 같았다. 열차 시간을 확인했다. 비는 틈에 테스트 범위의 영어 단어를 암기하려고 했다. 우선순위의 요건이 수없이 많았으므로, 이런 것 정도는 재빠르게 해치울 심산으로. 휴대전화의 메모를 훑으며 스크롤을 내릴 때, 운동화에 무언가 툭 닿았다.
작은 카드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주워 들고 옆을 바라보면,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성의 가방이 비스듬히 열린 게 눈에 들어온다. 지친 표정으로, 건너편의 전광판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인 그녀는 이오리의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떨어트리신 게 맞을까요?」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하면, 「아, 감사합니다.」 하고, 여성이 허둥대며 고개를 숙였다. 상대는 지갑을 받아 들고 무언가 더 이야기하려 했지만, 이오리는 가볍게 목례하고 철로에 가깝게 걸음을 옮겼다.
열차 진입을 알리는 짧은 멜로디가 울린다.
레일 위를 무겁게 구르는 바퀴의 음색이 가까워진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바람이 불고, 뺨에 머리카락이 달라붙고, 낯익은 자신의 체향이─물에 희석된 옅은 비누 향기와 손목에 뿌린 향수의 잔향이, 코끝을 스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공간을 절단하듯 바람이 몰아친다. 가방 한 켠에 둔 머플러를 꺼내 착용할지 고민했지만, 목에 감기는 천의 부드러운 감촉과 섬유유연제의 포근함을 회상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는 것마냥 시선이 풍경을 훑었다. 개화하지 않은 동백꽃 화단과 그 위 설치된 전광판. 이른 시간이라 조명이 들어와 있지는 않지만, 스크린을 장식한 캐치프레이즈, 새로운 곡의 컨셉으로 디자인된 의상, 그것을 몸에 딱 맞게 짜인 관처럼─무슨 비유를 하는 거야?─걸치고 만면의 미소로 이곳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나나세 리쿠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직전 마주쳤던 여성이 이오리를 앞질러 걸어간다.
모습. 
위로, 승객을 가득 태운 전철의 창문이 수없이 지나치고 느려진다─

뇌리에 각인된 붉은 펜라이트와 공연의 열기가, 현실의 풍경을 배제하고 이오리의 청각을 장악한다. 일순에 처리 불가능한 청감이 난무하여 오히려 무성 영화처럼 느껴질 때. 영원과 찰나가 동의어임을 믿게 해 주는 유일한 사람. 신을 믿고, 단 한 가지 질문을 용서받는다면 어째서 인간은 언제든 기억을 꺼내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지에 대해 추궁할지도 모른다. 보는 이가 없는, 캄캄한 무대 뒤와 같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는 잠깐 웃음을 지었다. 타인이 그 순간 이오리의 표정을 목격했다면, 분명 이렇게 말하겠지.
「저 감정의 끝에 놓인 대상은, 스스로 죽는 것조차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불현듯 볼 안쪽이 욱신거리며 아팠다……사랑니일까

─그리고, 선혈이 눈앞을 가로질렀다.

방금까지 평범히 인사를 나눴던 상대의 몸이 짓이겨지고, 목 위는 날아가 펜스에 처박힌다. 교복 셔츠에 점도 높은 혈액이 복잡한 패턴으로 흩뿌려진다. 누군가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감독에게 큐 사인을 받은 듯이, 첫 번째 비명을 기점으로 모든 이가 울먹이거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무대 끝의 격양감과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박동과 콘서트장에 울려 퍼지는, 사랑스러운 사람의 이름의 형태를 띤, 팬의 갈망, 햇빛의 프리즘, 함성,
위에 그것이, 겹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손을 뻗기도 전에 그녀는 달려 나갔다. 특별히 이쪽을 눈치채거나 신경 써서 한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라고, 이즈미 이오리는 이후 증언했다). 살아남은 사람 측에서 추정하기를, 단지 그녀에게 있어 오늘은 종지부를 찍을 날이라고 정해져 있었던 것뿐. 자신에게 있어 아무렇지 않은 삶의 연장일 중 하나가 타인에게 있어 끝이었던 것뿐. 끝. 마지막. 단말마─기어코 자신이 목격한 사건이 명실상부 투신자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이윽고 이오리는 생각했다.

〈극복해야만 해.〉 乗り越えなければならない。

차가운 수은을 뒤집어쓴 것처럼, 공포가 퍼져나갔다.





다시 아침. 이즈미 이오리는 익숙한 자신의 침대에서 눈을 떴다. 오늘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참여하고 이동 시간에 잡지 수록 인터뷰 답변을 마무리하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지만
……오후 9시부터 멤버들과 마지막 안무 연습을 마치고, 매니저와 상담할 시간도 마련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할 자료는 미리 준비했으니 15분이면 되겠지.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지만
그러고 보면, 냉장고에 우유가 부족했던 것 같아. 
눈앞에서,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두고, 상점가에 루미나리에가 들어섰다. 왼쪽 잇몸의 통증은 계속 심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유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음에 영향이 갈 테니 점검은 최적의 일정에 맞추고 싶었다. 아직 참을 수 있으니까. 심료내과의 진료실은 7층. 빛 조형물과, 커다란 트리와, 끊임없이 녹아내리는 눈의 길 위 겹쳐지는 연인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도 내려다보였다. 
〈다카시마야 백화점 앞에 엄청나게 큰 트리가 있잖아? 그 트리 꼭대기에 별을 올려보는 게 소원이었어.〉 리쿠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작년 성탄절에는 숙소에 하얀 트리를 두고, 다 같이 전구를 달고 편지를 넣은 오너먼트를 장식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없으신가요?」 의사가 질문한다. 이오리는 심장으로 이동하려는 통증을 입속에서 끊어내듯 꾹 참고, 야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변했다.
「진통제를 별개로 복용해도 괜찮을까요.」

상처가 난 혀를 짓씹으며 대기실로 나선다. 미츠키가 초조한 얼굴로 이오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좁은 공간 양면에 설치된 거울에 그들의 형상이 겹겹이 반사된다. 이오리가 4주 전 발생한 사건에 대해 털어놓은 상대는 미츠키뿐이었지만, 다른 멤버도 그에게 이변이 발생했다고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가족들마저. 말하지 않는다. 괜찮으리라고 믿는다. 믿음에 보답한다.
반드시, 어떻게든, 승강기 위의 디스플레이를 읽는다. 7, 6, 5, 4……. 쾅, 소음과 동시에 엘리베이터를 지탱하는 줄이 끊어진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을 시간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바닥으로 충돌한다. 핏덩어리가 되어 흐트러진다. 3, 2, 1.
「이오리? 다 왔어, 내리자.」 
현실의 꿈은 끝나지 않는다. 꿈을 기억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러니 끝나지 않는 꿈이란 사람이 약속함으로써 영원히 믿게 만드는 것뿐.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아름다운 대상이더라도 언젠가 사라져 버린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살아가다가 사라지는 것 중 어느 편이 행복한지 물어본다면
〈IDOLiSH7이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괜찮아?」 미츠키가 이오리의 손을 잡았다. 긴장하고 있었는지, 물기를 머금은 따뜻한 손이 살짝 무겁게 느껴졌다.
「괜찮아요. ……오늘은 조금 춥네요.」  
「그렇네. 앞으로 더 추워질 텐데……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해.」 
포옹하며, 다정히 어루만지지만, 중요한 부분까지 닿지 못하는 대화. 얼어붙은 벨벳 같은 밤의 공기에 입김이 퍼져나갔다. 〈약속 기억해. 나도 잊지 않을 테니까.〉 오너먼트 속의 편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고, 
아. 그걸 어디에 보관했더라. 

사건 후유증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의식이 또렷한 채 꿈을 꾸는 일이 잦아졌다. 영화를 감상한 후 그 세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처럼 꿈의 정경은 시야 뒤편에 숨어있다가 몇 번이고 현실 위에 겹쳤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자주 꿈에서 봐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자신의 탓이 아니다. 운이 나빴다. 바라마저 않는다고 해도 그는 완치될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마저 자신을 위한 일이므로 극복해 낼 것이다.
따라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하나였다.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일상적인 약품으로도, 부엌의 식칼로도, 언제나 착용하는 넥타이로도, 평범하게 인도를 걷고 있을 때마저 돌연 뛰어 들어온 차량에 부딪혀서 박살나 버린다. 
집에 가는 길에 머리 위로 공사 현장의 철물이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치료약이 존재하지 않는 병에 걸릴 확률은 어떻고. 돌연 발생한 심장 근육의 경련만으로도 사람은 죽는다. 단순한 발작만으로도. 그날 전철역에 서 있었던 것만으로도……타인은 물론이고, 제 선 안에 들여놓은 이들의 매분 매초를 제어할 권한과 능력 따위 이즈미 이오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마저 악화된 것을 느낀다. 불안감 없이 대인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점차 많은 힘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는……그가 밤마다 천 번의 기도를 올린다고 해도, 내, 가, 그 사람을 아무리 생각한다고 해도…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결말에는…….
나는 헤드셋 줄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때까지 울려 퍼지던 일곱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멈췄다. 
어둠과 정적이 가득 차올라, 창문 밖으로는 한 톨도 새어나가지 않는 찰랑거리는 고독 속에서, 미동 없이 서 있을 뿐. 





하지만 잔혹하게도,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크리스마스 이브. 쥐들도 잠든 새벽에, 나는 몰래 숙소를 빠져나왔다. 사건 이후 다시 찾지 않았던 전철역으로 향했다. 상점가에 가까워질수록 도시가 깨어나며 움트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수만 명의 사람, 수많은 가능성 중 손에 넣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육체뿐. 이 우주의 넓이에 비교하면 보잘것없고 미약한 존재로부터 흘러넘치려고 하는 절망에, 도와달라는 말은 삼켜지고 존재하지 않는 문장으로 치부된다. 문득, 얇은 카디건 차림으로 외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쩐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기계적인 동작으로 지갑에서 IC 카드를 꺼낼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오리!」 
이름을 듣는 순간, 꿈속에 있다고 직감했다(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만약 이것이 꿈이라면, 깨어나야만 하겠지. 깨어나기 위해서는 다시 누군가를 죽여야만 할 테고. 「이오리! 기다려…….」 (돌아보지 않는다.)음성을 듣는 순간 그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목소리가 따라오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기로 했다(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라고 회상의 윤곽을 헤매며 덧그리는 손이 써내려간다). 복잡한 지하도를 달리고,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 내려갔다. 
아, 이렇게 오래 달리게 해서는 안 되는데. 승강장에 도착해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다. 하늘은 칠흑이다. 열차가 진입할 것이라는 안내 음성이 울렸다. 
시선이, 파노라마 사진을 찍는 것마냥 주변을 훑는다. 조급하게, 집착적으로, 탐욕스럽게. 
「아, 찾았다!」
펜스를 따라 나란히 설치된 동백 화단과 그 위의 전광판. 붉은 꽃 위에 피어난 미소. 나나세 리쿠가,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대형 스크린 앞에서 팔을 흔들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화면에 비해 그의 모습은 역광을 받아, 검은 실루엣으로 보인다. 이쪽을 향해. 「어느 방향으로 내려가야 할지 몰라서.」 숨이 차는 기색 하나 없이 그는 소리친다.
「반대편이었을 줄이야……금방 다시 올라갈게! 거기 가만히 있어!」 
「제가 갈게요.」
「뭐? 잘 안 들려!」
「제가 갈 테니까, 나나세 씨야말로 그곳에 가만히 계세요!」  
「이오리? 잠깐만…….」
열차 진입을 알리는 짧은 멜로디가 울린다. 레일 위를 무겁게 구르는 바퀴의 음색이 가까워진다.
〈……알겠어. 기다리고 있을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바람이 불고, 어디선가 햇빛의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결국 전부 거짓일 테니까. 일어나면 지금의 슬픔은 허상이라는 걸 알게 되고, 언제나처럼 변함없는 당신이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빨리 와. 

이즈미 이오리는 몸을 돌려 힘껏 뛰었다.
붉게 타오르는 일출을 뒤로하고서, 자신이 만들어 낸, 만들어 낼 최고의 현실이─최악의 꿈속에서 산산이 조각나는 풍경을 뒤로하고서.

!! 필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