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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

Etc/Novel

2022. 10. 21.

From The Cradle To The Grave 
チェンソーマン©藤本タツキ
 
 
 
1997. 12. 20 / PM 08:32
 
시계탑 저편으로부터 몰려든 구름이 희미한 햇빛을 가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긴 행군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병사들의 구둣발 소리처럼 무거운 물이 대기를 짓눌렀다. 두 사람은 카페 구석 자리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있다. 그들의 옆모습을 담은 유리창 위로 음울한 사선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손대지 않은 커피가 식는다. 크림의 지방이 분리되어 티스푼에 포말 무늬를 남긴다. 카운터에서 유리컵을 닦는 직원이, 마른 헝겊을 내려놓을 때마다 낯선 손님들의 얼굴을 힐끗 바라본다. 둘 다 오른쪽 눈을 검은 천으로 가린 채였다.

97년은 풍족한 해였다. 총의 악마는 쓰러지고,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 무뎌진 공포는 우리의 사냥감을 좀먹어갔다. 그럼에도, 어깨에는 죽음을 얹고 시선에는 절망의 비탈길을 담은 채로 단테 리히터는 말한다.
 
「디트로이트에 가야 해.」
 
문장의 끝을 섬광이 좀먹었다. 간극을 두고 뇌성이 울린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호기심과 자존심, 자만, 집착, 선의와 도덕성, 지옥 반대편으로 걷는 삶의 의지는 견고한 유리 상자 속에 뒤엉켜 있다. 그는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지를 숨기는 거짓말에는 실패했다. 누군가 테이블 위를 톡 두드렸다.
 
「치안 나쁜 도시잖아.」
「그래.」
「언제 돌아오는데?」
「찾아야만 하는 게 있어. 명확한 단서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차후 계획이 불투명해서…….」
「물건?」
「아마도.」
「단테, 돌려 말할 필요는 없어. 같이 갈 테니까.」
「…….」
「올해 안에는 마칠 수 있을 거야.」
 
나는 미소를 만들어 보인다. 너는 웃지 않는다.
 
 
 
1997. 10. 31 / PM 06:28
 
두 달 전의 일이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누군가의 이름 위 엎드려 있었다. 세계의 반은 암흑이며, 전신에서 크고 작은 통증이 느껴지고, 코뼈가 부러진 듯 뭉툭한 아픔이 머릴 울렸다. 반듯하게 정렬된 무덤들 사이에 젖은 낙엽 꼴로 누워, 바닥에 붙은 석판에 피를 흘렸다. 음각으로 새겨진 고인의 성명에 불온한 의식을 치르는 듯 혈액이 스며들었다.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동물의 뼈처럼 말라붙은 나뭇가지들 사이 노을이 걸려 있다. 지평선 끝에서 조부의 관에 꽃다발을 내려놓는 자신의 모습을 가까스로 떠올려내자, 비명이 다시 고막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총격전이 휩쓸고 지나친 묘지에서는 떨어진 이파리가 바람에 휩쓸려가는 소음만이 울렸다.
무고한 이들과, 그에 발포한 사람들조차 죽은 자들의 터전 위에서 모두 목숨을 잃었다. 피만을 받아먹은 표석은 양호한 편이었다. 저 아래 묻혀 있는 이들이 다시 한 번 일어섰다 쓰러진 것처럼 지천에 시체가 널려 있다. 생존의 기쁨은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죽음이라는 개념을 체험시키기 위해 연출한 무대 같았다. 앞으로 천 년을 더 산다고 해도 왼쪽 눈에 담긴 풍경만큼 죽음에 가까운 공기를 마실 수 없을 것 같았다. 부서진 손목시계가 불규칙적으로 째깍거리는 소릴 내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너져내린 안공에서 작은 살점이 떨어진다. 나는 출구를 찾아 헤맸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당신은 곧 죽을 거예요」라고 전했더라면 반발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고통마저 희미해지며 삶의 주인을 떠날 참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어느 순간 내가 쓰러져 있던 묘비 앞에 서 있었다. 나는 희미한 시야로, 검은 코트를 입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유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프겠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조금….」
「조금 많이?」
「악마인가?……네가 한 짓이야?」
「아니야.」
「그래.」 다 무슨 소용이겠어.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적어도 상대에게 도와주려는 기색은 없었다. 눈앞이 흐려진다.
「살려줄 수 있어.」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면?」
「…….」
「내 절반을 찾아줘. 그때까지 내 절반을 빌려줄게…….」
 
「그때까진 잊고 있어도 괜찮아.」
 
 
 
1997. 12. 20 / PM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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