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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3)

Etc/Novel

2022. 10. 21.

「올프레스 에스프레소에서 만나. 전에 빌렸던 책 돌려줄게.」 연락을 받고 카페로 향해,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두 잔을 비우고 점내의 재즈 음악이 한 바퀴 돌 때까지, 시릴 메이스필드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시집을 돌려받은 건 삼 주 후의 일이었다. 

청색 양장본이 병실 사이드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다. 머리에 붕대를 맨 사람이, 여름 이불 위로 자신의 손을 기도하듯 모아 잡는다. 눈이 마주치고, 그는 말라붙고 갈라진 입술을 움직여, 한 마디를 뱉었다.

「그냥 계단에서 떨어진 거예요.」
「거짓말.」

좁은 창에 걸린 커튼이 흔들린다. 흰 천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레이스처럼 걸린다. 만나자는 이야기를 남긴 채, 그는 종적을 감췄다. 어떤 연락도 없이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을 때 돌연 시외 대학병원 주소지만이 적힌 메시지가 도착했다. 무게를 둔 관계라고 체감한 적 없었기에 오히려, 영영 사라진다고 받아들이자 곤혹스러워졌다. 걱정과 슬픔보다는 불안. 「약물 중독이래.」 로비에서 그의 가족과 주고받은 대화를 떠올려낸다. 믿지 않으며 나는 대답했다. 거짓말. 
스스로도 지나치게 냉정하다고 느꼈다.
책 옆에 놓인 프리지아 꽃다발 사이에서, 건강하길 바란다는 문구가 인쇄된 카드가 흘러내린다. 누구도 그것에 신경쓰지 않고, 버드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길게 파도 소리를 내고, 물러난 후에서야 대화는 보편적인 방향성을 찾았다. 

「……괜찮아?」
「괜찮아요. 조금 부딪혔을 뿐이고, 내일이면 퇴원하니까. ……늦어서 미안해요.」 그는 탁자 위를 눈짓했다.
「안 읽는 거야. 가져.」
「…와 줘서 고마워요.」
「네가 부른 거잖아.」
「그랬던가?」
「미안한데, 지금보다 더 괜찮은 모습이었다면 화냈을 거야.」

상대는 입꼬리를 올려 웃지만, 시선에 담긴 것은 희멀건 벽지일 뿐이다.
「단테, 산책 좀 할래요?」

 

 

우리는 인공 호수 앞의 벤치에 걸터앉아 녹색 공기를 들이마셨다. 자판기 밀크티에서는 먼지 향이 났다. 수면에는 뒤집힌 정경이 담겼고, 파문이 일 때마다 8월 끝자락의 빛이 산산조각났다. 포플러 나무가 상승시킨 지평선 너머로 병동 건물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나는 창문 반대편 벽에 바싹 붙어있던 1인용 침대에 대해 생각했다. 

「왜 거짓말이라고 여겼어요?」
「이야기 들었어. 에리카에게…….」
「그러면 왜 태연한 척 했는데?」
「그건 네가…….」

상처받을까봐? 아니.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여기까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침묵 따위 세계의 음색의 끝은 아니라서, 어디선가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시릴은 몸을 조금 움츠린다.

「뛰어내린 거 맞아요.」
「계단에서?」
「집 옥상에서…….」

그리고는, 믿을 수 있겠냐며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식의 그림자를 욕망한 적 있는가?

학회가 끝나고 작은 파티가 열렸다. 피로가 마저 해소되기 전 누군가 도수 높은 술을 잔에 섞었다. 긴 테이블 구석에서 누군가들은 양자 진공의 예측된 질량이 우주 팽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지, 암흑 물질이 어떤 입자로 만들어졌는지, 왜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물질이 반물질보다 많은지에 대해 토론했다. 유명한 가설들이다. 일컫어지는 주제는 점차 난해해졌으나 해결책이라 튀어나오는 답은 하나같이 형편없었다. 비쩍 마른 소시지와 감자튀김이 바닥나자 어느 의문이 주어졌다. 왜 모든 것은 베일 너머에 존재하는 걸까?
생각해 봐. 가려져 있다는 건 본래 드러나기 위해서란 뜻이지.
그렇지.
사실 향하는 방법이 문제였던 것 아냐?
그건 너무 결과만 찾고자 하는 방식같아.

발화자는 수첩 종이를 찢었다. 푸른 펜으로 서로 다른 두 점 A, B를 표시했다. 그가 A에서 B로 향하는 직선을 긋지 않고 종이를 접어 도착점과 출발점을 만나게 했을 때 모두가 야유했다. 유치해. 30년 전의 설명법이다.
종이가 펼쳐졌다. 그 위엔 투명한 알약이 세 정 놓여 있었다.

시릴은 그 사람을 동정했다. 그의 팀은 관측 기기의 고장 탓에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변경 가능한 연구 주제는 이미 다른 조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손뼉 소리의 격차는 지금까지도 고막을 윙윙대며 울렸다. 완벽하게 일을 마친 이들조차 당장 탈력감에 휩싸여 있으니 알 만했다. 그러나 약을 내민 이의 표정에는 실망감이나 절망 따위가 없었다. 그는 고조되어 속삭였다.
이건 우주에서 온 씨앗이야.

 

너는 그걸 믿었어?
믿지 않았고, 받아들지도 않았어요.

!! 필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