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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교환] 666번 극장에서

Etc/Novel

2023. 3. 7.

체인소 맨 AU

원작 藤本タツキ - チェンソーマ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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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전 1시의 극장은 영안실처럼 조용했다. 상영 중인 영화는 한 종류뿐이었고 우리 외엔 관객이 없는 듯했다. 팝콘이니 콜라 자판기니 하는 것들이 올려진 긴 책상 앞에서, 붉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디셈버, 맥주 시켜도 돼요?) 우리는 D열 여섯 자리를 나란히 구매하고 관람실에 들어섰다. 연극이나 뮤지컬 상영도 하는 곳인지, 특이하게도 높은 무대 위에 스크린이 설치된 공간이었다. 부드럽고 무거운, 버터와 커피 향기가 나는 어둠이 상영관 전체에,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발밑에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여기 전에도 와 본 적 있지. 그땐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암흑의 안개에 파묻혀, 우리는 화면이 점등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 영화 재미있어?) 프랜차이즈 햄버거 브랜드의 새 상품과 가정용 제초기 광고, 비상시 탈출구를 찾는 법에 대한 짧은 영상이 이어졌다. (바보야, 지금 그런 게 중요하냐?) 그러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게 되었을 때 디셈버 콜린스가 중얼거렸다.
「이 작품 시놉시스가, 제가 요즘 꾸는 꿈이랑 비슷해요.」
「커다란 관을 메고 집에 가려 하는데, 아무리 걸어도 낯선 풍경만 이어져서 돌아갈 수 없는 거예요.」 내가 알기로 영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고향까지 마약 운반을 하게 된 사람의 이야기였다. 이 시대엔 드물게도 흑백 영화라고. 
「무슨 상관이람 그게.」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일하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푹신하고 매끄러운 의자 탓에 자꾸만 졸음이 오려 했다. 콜린스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동시에 스크린이 팟 하고 어두워졌다.

「아, 시작한다.」

 

666번 극장에서
1998년 12월 24일
CAST
디셈버



「신축 영화관에서 직원 11명이 행방불명, 한 명은 사망. 실종은 새벽 1시부터 6시 사이에 주로 발생하였으며 뚜렷한 목격 정보가 없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악마의 짓일까?」
「선배가 생각하기에는 어떤데요?」
「넌 사람이니까 모든 인간의 생각을 다 파악할 수 있냐?…됐어. 어차피 윗선에서 그렇게 판단했으니까 이 인원으로 조를 짠 거겠지. 수가 너무 많은 감이 있긴 한데…그리고, 사망한 한 명은 어떻게 된 거야?」
그러자 디셈버 콜린스 대신, 뒤에 서 있던 데블 헌터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영사실에서 발견됐어. 온몸의 뼈가 사라져 있었대.」

* * *

단 한 번이었지만, 녀석 앞에서 실수한 적이 있다. 〈체인소 맨〉이 총의 악마를 쓰러뜨리고 전 세계가 축제 분위기일 때, 우리도 어느 이자카야에서 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가게 구석에 설치된 TV에서도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 총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인류는 겁도 없이 악마의 이름을 대며 경배했다. 「체인소 맨 만세!」 옆자리에서도 같은 건배사를 읊었고, 디셈버 콜린스와 나는 묵묵히 식어버린 맥주병을 뒤적거리고만 있었던 그날. 그는 무료하고 따분해 보였다. 다른 치들처럼 기뻐하거나 안도하지 않았고 나도 굳이 이유를 질문할 마음이 없었다. 당연히. 악마 하나의 존재가 사라진다고 해서 나와 상대의 계약이 끝나는 것은 아니므로. 이건 따지자면 발렌타인 데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일회성 이벤트고, 세상 어디에나 이벤트에 못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나는 악마였던가. 아무튼.
흘릴 말도, 안주도 얼마 남지 않게 되자 디셈버는 휘청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했다. 「저 담배 좀 피우고 올게요. 아니 그냥 지금 돌아가야겠다.」 
「어디로?」 돌아갈 곳 따위 없으면서. 당시에 그런 생각을 짧게 했던 것 같다.
「그야…뭐…….」 그는 얼버무리며 일어섰고 나는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술집 문에 달린 종이 한 번 울리고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테이블 위에 무언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디셈버가 언제나 왼쪽 손목에 착용하는 고급 시계. 아마 아버지로부터 받았을 부담스러운 선물을 여전히 의미도 모르는 채로 가지고 다니며, 몸을 씻거나 식사할 때마다 소중히 벗어서 내려놓는. 이제 그를 기억할 때 성씨까지 부를 수 있는 건 나뿐임에도. 세계에서 존재가 유리된 자는 비가 쏟아지는 도시의 파편 위 우산도 없이 걸어갈 것이다. 나는 느리게 일어나 시계를 코트 주머니에 넣고 가게 바깥으로 나섰다. 양옆 골목을 살피고 역 쪽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저 멀리 가로등 불빛 아래 익숙한 사람의 실루엣이 비쳤다.
「야!」 우산 펼치는 것을 잊은 채로 나는 외쳤다.
몇몇 사람들이 이쪽을 흘긋거렸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실수한 건 다음 순간이었다. 나는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동조하지 않으리라고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그를 불렀다.
「콜린스!」
그러자 대부분의 행인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름을 불린 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천천히, 확실하게. 나는 가만히 서 있기 불가능할 정도의 강렬한 질투심과 허무함을 느꼈다. 곧 거리 너머로 인영이 사라졌다.

* * *

화면 속에서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기차에 몸을 싣고,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카메라가 그의 시선을 줌 인하여 비 내리는 선로를 다시 한참이나 찍어대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왼쪽 손목을 바라본다. 그 이후, 나는 디셈버에게 시계를 돌려주지 않았다. 우습게도 그는 자신이 시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마저 모르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그의 눈앞에서 시간을 확인해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비가 쏟아진다. 참 지루한 영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암흑 속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악마는 없는 것 아냐?」
「인신매매단이 퍼트린 가짜 소문이라거나. 그런 케이스도 목격한 적 있거든요.」  
「그럼 뭐야. 우린 크리스마스 이브에, 애인도 아니고 직장 동료들끼리 안 팔리는 영화를 보러 온 거냐? 차라리 악마의 소행에 말려드는 편이 훨씬 덜 슬프거든?」 
「크리스마스 정도는 평화롭게 보내고 싶은데요…….」 
그들은 계속 이야기하고, 스피커에서는 열차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언제까지 자는 척 할 생각이야?」 불현듯 눈을 뜬다. 
다음 순간 좌석에 앉아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 * *

달리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마주했다. 세계는 흑과 백, 두 가지 색으로만 표현되어 있었기에 차량 복도에 맥없이 쓰러진 동료들의 피는 흡사 타르처럼 보였다. 디셈버 콜린스만이,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의 옷자락이나 살점을 짓밟고 멀쩡하게 서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너 누구야?」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낯선 풍경밖엔 펼쳐지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
「너…….」  
마치 영화 속에 떨어진 듯한─아니 분명 그렇겠지─광경 속에서 버디의 껍질을 쓴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네.」 그의 발치에는 무거워 보이는 나무 관 하나가 놓여 있다. 
「저 속에 있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을.」 객실과 함께 관이 흔들리며 쇳소리를 냈다. 비스듬히 닫혀 있던 뚜껑이 벌어지더니 아무것도 없는 내부가 보였다. 시든 백합 꽃다발이 나뒹굴고 있을 뿐인.
「바라는 게 뭐야?」 나는 그를 응시했다. 자신의 목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운 음성이 흐른다.
「누군가 한 사람의 유해. 그렇게 하면 막이 내린다.」
「너는…뭐지? 영화관의 악마라도 되나?」 동시에 비웃음이 새어 나온다. 여유라고는 전혀 없는.
「비슷한데, 그건 너무 멋없잖아. ……〈연희의 악마〉라고 불러 줘.」 
찰나, 상영관으로 돌아온 것처럼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였다. 열차가 터널을 지나는 모양이었다. 동요하거나 공포에 질릴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지어야만 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하지만 언제 명을 달리 할지 모르는 동료 몇 명. 웃기지도 않은 연극에 몰입하여 선배 공경도 못 하는 어리석은 버디. 혹은,
…줄곧 사라질 기회만 엿보던 존재가. 하나.
「그렇게는 안 돼. 네겐 영혼이 없으니까.」
 빌어먹을.
「도움이 필요하니?」
「됐어.」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말했을지 고민하고 있잖아. 나는 답을 알고 있어. 이 몸이 연기하지 못하는 존재란 없다. 그러니 분명…….」
「생각 중이니까 조용히 해 줄래?」
「필요한 만큼 사용하시고, 동료들을 도와주세요. 괜찮을 거예요. 전에는 혼자 도망쳤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분명 자살이 아니고, 어쩌면 죽음조차 아닐지도 몰라요.」
「…….」
「왜냐하면, 나를 죽을 수도 없는 존재로 만드는 자는 분명 당신밖에 없을 테니까.」
아주 오랫동안 관의 빈자리를 노려보았다. 이제 기차는 터널에서 빠져나와, 녹아내린 설원을 가로지른다. 경적 소리가 들려오지만 어떤 역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나는 극본의 페이지를 넘기듯, 운명에 주어진 대사를 읽었다.
「이건 계약이야.」 눈앞의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네 남은 이름을 가져갈게. 대신 이 사람들을 살려줘.」
악마는 답례라도 하듯 환히 미소 지었다. 나는 그 사람이 저렇게 웃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고 상기하면서, 발 아래가 무너지는 느낌, 꿈에서 떨어져 현실로 내몰아지는 감각에 몸을 맡겼다.

* * *

다음 날에는 업무 성과가 보고되었다. 누군가의 시신을 위한 장례식이 열렸고 그의 시신은 공동묘지에 묻혔다. 온몸의 뼈가 사라진 탓에 화장은 할 수 없었다. 비석에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았다. 나는 장례식에도 위문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공안에 남았다. 아침이 되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눈을 뜬다. 서류 작업을 하고 악마를 처리하고 식당에서 1인분 메뉴를 주문하고, 담배나 라이터가 모자라면 편의점에 들렀다가 쓸데없는 물건까지 구매해버리고, 밤이 되면 조용한 집에 기어들어가 잠에 드는 날이 이어졌다. 반복되는 일상에 안착하여 달리의 시계 그림처럼 늘어지다가. 문득 디셈버 콜린스에게, 우리 집에 오지 않겠냐고는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깨닫게 될 뿐이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채로. 

그리고 1년 후, 아무렇지도 않게 2000년은 왔다. 싸구려 주간지가 Y2K 문제와 종말 예언을 더는 다루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관람한 영화의 재개봉 소식을 접했다. 나는 처음으로 외출 허가서를 받아 극장으로 향했다. 주말 저녁의 영화관은 미지근한 불빛과 타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른 한 장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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