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독 !!
TOP

blue

Etc/Novel

2023. 6. 11.

비. 회색 공기. 알코올 냄새만 남은 향수. 금이 간 LCD의 푸르스름한 윤곽. 철제 계단에 메아리치는 발소리. 시들어 버린 화분. 6월의 난층운이 도시를 감싸고 만들어내는 습기. 해가 떨어진 직후 청색의 정경. 침묵. 억누르는 호흡. 불규칙적인 맥박. 바닥의 타일 틈의 핏자국. 반쯤 열린 창문 틈으로 빛의 줄기가 스며들어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다. 나는 텅 비어버린 샴푸 용기에 물을 넣고 흔들었다.
기포 터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리고 지친 몸은 닻이 내려가듯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왼쪽 어깨를 매만지면, 주사 자국은 이미 옅어졌다. 집에 돌아가고 싶어. 중얼거린다. 목소리는 거품의 언어가 된다.
「돌아가고 싶어.」 다시 한번. 낮게, 우울하게, 긁어내리듯 진동하는 음성을 듣고 누군가 욕실 문을 열었다.
「감기 걸려요.」
「별로…….」
「일단 욕조에서 나와야 집에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알아요.」 그는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 문앞에 타월을 놓고 돌아섰다. 거실까지 걷는 걸음이 들린다. 맨발과 카펫. 희게 질린 피부와 차가운 손끝. 나는 천천히 일어선다. 신체가 창백한 수증기에 휩싸이고, 현기증을 느낀다. 당장 일 초 후의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불안감.
밤은 어떠한 예고 없이 닥쳐온다. 세계는 암흑 속에 놓인다.
무언가의 길잡이처럼, 테이블 위에서 알코올램프 불빛이 피어오르고 우리는 마주 앉는다. 뜨거운 물에 반쯤 녹인 커피를 다시 절반 삼키고…….
「끔찍해.」 약에 대해서 떠올려 냈다. 동시에 처음부터 두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좋은 트립은 상상력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현실주의자인 편이 낫죠. 망상이나 환각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그럼 현실적으로, 이 집은 이번 달 내로 정리할 예정이라서요. 당신과도 이제 만날 일은 없겠네요.」
「어디로 가는데요?」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나의 불빛, 한 사람 몫의 잔, 혼합되지 않는 시선. 컵 바닥에 가라앉은 설탕을 티스푼이 긁으며 모래 섞이는 소리를 낸다. 거짓말을 듣는 것과 대답조차 갖지 못하는 것. 살아서 영영 만나지 못하는 관계와 죽어서 영원히 헤어지는 운명. 파멸하는 미래와 숨이 막힐 정도로 지루한 일상. 나는 저울 위에 상대의 심장을 올려놓는다. 손가락을 들고 무언가를 가리킨다.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을 버리는 것이 타인을 바라는 것보다 단조롭고 간단하니까. 왜냐하면 진실이란 것은 과거에만 존재하니까.

따라서 욕망의 대상만이 현실. 나머지는 전부 잿빛일 뿐.

!! 필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