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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교환] Pray for the Impossible

Etc/Novel

2023. 7. 5.

Pray for the Impossible
https://youtu.be/JX3ES2GW1EQ


예를 들어 이것은, 신화의 이야기.

피그말리온이라는 이름의 조각가, 그에겐 상아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갈라테이아─조각상은 그의 진실된 연인이었다. 상대가 입을 옷을 준비하고, 비밀스럽게 입맞춤하거나, 사랑을 속삭이는 나날. 하지만 그런 일상만으로는 불충분했다. 여신 아프로디테의 축제 날.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걸작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프로디테가 보낸 에로스가 조각상의 손에 입을 맞춰, 상아 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 곧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였다. 갈라테이아의 손에는 반지가 생겨났다. 손가락을 잘라도 빼낼 수 없는 반지는, 두 사람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라는 사랑의 상징이었다.


이것은 망가진 영원의 이야기,

어디선가, 돌연히.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모닉 르메르만이 그 소리를 들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클레아티안 제프리의 침실 문을 연다. 정확히는 〈클레아티안 제프리의 침실이었던〉 공간의 문. 내부는 어두컴컴하다. 모닉은 리허설조차 시작하지 않은 무대에 갑자기 올라온 것처럼 헤매다가, 전등 스위치를 찾아 누르지만 작동하지 않는다. 수 분간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도록 내버려 두면, 침대에 웅크린 그림자를 발견한다. 제프리는 침대에 누워, 금이 간 오른손을 붙잡은 채 몸을 떨고 있다. 발치에는 낡은 조각도가 굴러다닌다. 
「……무슨 일이야? 」
뱉으면서도 형식뿐인 인사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대답하지 않는다. 모닉은 반사적으로 조각도를 주워 들고, 자신의 겉옷 주머니에 넣는다.
「당신이 언제나 늦으니까…….」
원망이 담긴 말이다.
「미안해.」
「왜 늘 그쪽이 깨질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까. 영문을 모르겠네.」
주머니 속으로, 조각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 칼날을 휘두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득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오른다. 눈이 마주친다. 안드로이드의 텅 빈 눈이 모닉을 강렬히 응시한다. 떠나버린다면 용서하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는 듯이.

물건을 부수는 취미가 있었다.
손안에서 망가지는 것에는 의식이 없다. 비명을 지르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지도 않는 단순한 사물. 죄책감 따위 없었으나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일단 부수기 시작하면,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다는 것.
조각나는 원형. 파편의 산재. 다시는 복구되지 않기에 본질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대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파괴의 반작용이 자신에게도 닥쳐온다는 감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라 하더라도 산산이 조각난 이후에는 그저 편린에 불과하다. 그것을 보석이라 부르던 현상은 과거로 밀려난다. 모든 것이 자명하고 공정하게 판결되는 모닉 르메르의 세계에서, 오직 그 자신만이─대상의 이름과 존재를 괴멸시킬 수 있는 절대자였다.

모닉은 팔을 뻗어 제프리의 상처를 쓰다듬는다. 왼손에 이어서 오른손. 그다음은? 언젠가 상대는 완전히 부서질 것이다. 알고 있다. 눈앞의 사물에 의식 따위 없다.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그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는 건, 슬픔에 잠긴 살아남은 이들이 투영한 의지일 뿐. 클레아티안 제프리의 육체는 모닉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언젠가 흙과 먼지로 돌아갈 신체의 파편은 이제 두 번 다시 동작하여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을 붕괴시키는 과정은 새 시대를 맞이하여 지난 역사의 책을 불태우거나, 책상 위 올려져 있던 화병의 시든 꽃을 버리거나, 눈을 뜨면 무의식의 저편으로 흩어져 버리는 꿈을 굳이 붙잡지 않는 감각으로 자행되어야만 한다. 두 사람의 약속. 냉정한 심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꼭 너를….」 기약 없는 소릴 뱉으려다 극본을 잊어버린 배우처럼 멈춘다. 「아니, 네가 원하는 건 전부 이뤄줄게.」 결국 이어지는 건 자신의 소망. 제프리는 차갑게 대답한다. 「좋겠네요.」
「뭐가?」
「스크립트에 없는 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살아 있는 사람의 특권이잖아요.」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진심으로…….」   
「그런 식으로 연명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건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당신만 없었더라면.」

「─당신만 없었더라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 텐데.」

의론은 평행선을 달리는 채로, 두 사람이 서로의 본질을 버리지 못한 채로 존재하는 한 끝이 보이지 않아서. 모닉은 그의 방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언제나 울고 싶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그건 문 안쪽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추측조차 오만이거나.


늘 주고받는 말싸움. 미적지근한 공기 속에서의 화해. 반복되리라 생각했던 일상, 막연한 기대 따위는 이날, 갑자기 종결되어 버렸다. 그 다툼 이후로, 두 번 다시 모닉 르메르가 클레아티안 제프리의 눈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모닉의 부재 대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프리의 명의 앞으로 선물이 도착하게 되었다.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었을 때, 포장 속에서 제프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모닉 르메르를 모방한 인형과 작은 가위. 그 사람은 꼭두각시이길 포기하고 자유로운 여행을 떠났다고 여겼다. 도망친 것을 증오하며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슬퍼해도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망설이며, 인형을 망가트렸다. 단편에 손을 베여가면서 찾아낸 우표보다 작은 종이에는, 그의 전언이 쓰여 있다.

─ 네 곁에 있어도 괜찮은 〈나〉를 찾으러 갈게.


이 세상에 영원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고독이야말로 단 하나의 영원일지도 몰라.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혼자이고 죽을 때까지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개개인의 존재가 유일한 만큼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간다는 현상만이 절대 달라질 일 없는 진리. 말하자면 클레아티안 제프리는 전 인류의 운명을 깨트리고자 살았고, 그 진실에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철저히, 고독하게. 남겨진 안드로이드는 분명, 제프리의 불안과 채워지지 못한 달성감을 상징하고자 만들어졌을 것이다. 불완전하고 쓸모없는 존재다. 그런 자신이 단지 누군가의 편지를 애타게 기다릴 뿐이고, 답장조차 건네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는 지금이 무척이나 절망스러웠다.

모닉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선물 상자. 내용물은 언제나 그를 닮은 인형, 인형을 파괴하기 위한 도구. 처음엔 그저 헝겊을 얼기설기 기워 만든 천 조각에 불과했으나 점차 디테일이 붙어서, 지금은 포장을 뜯는 것만으로도 꽤 고생이다. 종이, 진흙, 도자기, 청동, 상아, 재질이 무거워질수록 부술 때의 죄악감이 커졌다(정말로?). 복수를 당하는 것인지, 포상을 받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수십 명의 모닉 르메르를 깨뜨렸다. 잘 움직이지 않는 두 손으로. 그에게 자신을 부숴달라고 말했던 두 눈으로. 모닉의 유사품의 말로를 지켜보았다. 파편은 전부 빈 작은 방에 밀어 넣었다. 그 위를 걷기만 해도 두 다리는 망가지고 말겠지.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이제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 자신은 가장 처음부터 생명이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욕망하기에 지쳤다. 그저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골동품일 뿐.

고장 난 헤드셋에서는 노이즈조차 들려오지 않고, 세계의 소음은 그의 생명 없음을 비웃으며 둔탁하게 고막 속에 스며들었다. 그런데도 한참이나 해안가를 산책하다가, 제프리는 현관으로 돌아왔다. 방문 앞에 커다란 상자가 놓여있었다. 당연히, 주문한 악보집 따위일 리 없다. 그를 기다리는 유일한 보고를, 열고 싶지 않다고 간절히 바라며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침실이었던 장소. 욕조에 전부 담지 못한 옷조각은 타일 위로 흘러넘치고, 서랍장은 아무렇게나 열린 채 형체 잃은 것들을 품고 있다. 드문드문 흩어진 적색, 비밀스러운 흰색, 바다의 검정과 파랑, 윤슬과 같은 은색, 버리지 못한 조각들이 가득한 공간. 모서리에 비스듬히 세워진 전신 거울이 모든 광경을 두 번 비춘다.
상자를 연다. 묘한 냉기가 공기 중 퍼뜨려진다. 피가 흐르듯 부드러운 피부. 바람 사이를 달려온 것처럼 싱그러운 풀의 향기. 관절의 이음매조차 없는 사지와 열리지 않는 눈꺼풀. 그것의 왼손에서 정교한 나이프가 떨어지고, 동시에 깨닫는다. 의식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사고하고, 사고가 끝나기도 전에 웃을 수 있는 생활을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삶에는 가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은 흔한 이야기지만, 결국 그 사람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돌아오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늘 다른 주소로 소포를 보내온 탓도 있지만, 설령 그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되돌아온다 해도, 함께 있으며 서로를 상처입히는 것 이외의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그때의 우리는 이미 잊혔다. 
잃어버렸다. 
제프리는 동봉된 나이프로 그것의 심장을 찌른다. 붉은 보석이 와르르 바닥에 쏟아진다. 파편에 긁혀, 자신의 몸도 엉망진창이 된다. 거울이 깨진다. 거울 속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가 둘 다 무너져 내린다. 조각나는 원형. 파편의 산재. 다시는 복구되지 않기에 이름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품에 안겨 있던 인형이 손을 들고, 두 사람의 균열을 다정히 쓰다듬는다.

─ 미안해. 결국 찾아낼 수 없었어.

마지막에,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린 기분이 들었다.

!! 필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