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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

Etc/Novel

2023. 2. 26.

인세인 팬메이드 시나리오
room-0 스포일러 (w.もこ/@mokoxx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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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사람을 죽이기로 마음먹었을 때, 우리는 인공두뇌에 어떻게 하면 죄책감이라는 프로세스를 삽입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었다. 외부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지하 시설에서는 이미 20명 남짓한 안드로이드가 생활 중이었고 그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는 것이 나와 그 사람의 주요 업무였다. 신세대 안드로이드 그룹은 자기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그들이 폐기 처분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게다가 허구의, 새로운 형태를 빚어낸 것이 아닌, 사형 집행된 범죄자를 베이스로 오토마타를 제작한 덕분에 연구원들이 실험체를 대하는 태도에는 다소 조심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므로. 돌아갈 곳은 없고 미래의 파멸밖엔 예지 되어 있지 않은 삶. 이를테면 처음부터 깨진 컵이라거나 금이 간 보석이 올려진 반지 따위 아무도 구매하지 않는 것과 같이 그들에겐 이용당하는 것 외의 존재적 가치가 없었다.
지속되는 과중한 업무와 비윤리적인 가설의 순환.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다고 인지할 때마다 무너지는 바닥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고 모두가 내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관자놀이에 권총을 대고 발사하는 짓이었다고는. 그런데 자신을 향한 파괴 충동을 아낌없이 허용할 만큼 강하지도 솔직하지도 않아서, 이건 분명 인류나 대의나 뭐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위한 희생이거나 공양일 거라고 생각하며 여러 가지 감정으로부터 도망쳐 왔다. 누구나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튼 내가 이곳에서 느낀 회의감 같은 건 이미, 1968년 출간된 필립 딕의 소설이 서술하고 있을 테니 더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아무것도 아닌 날이었다. 자판기 커피와 담배 한 개비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옥상에서 다음 회의까지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에게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슬슬 내가 사람인지 로봇인지조차 모르겠어. 어쩌면 로봇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도록 명령받은 것 아닐까?」  
「이 연구의 총책임자는 너잖아.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적어도 예정된 끝이 있고, 빨리 찾아온다는 점에서 그것들이 나보다는 행복할지도 모르지.」
「어떻게 위로해줘야 좋을지 감이 안 오는데……평소에 휴식은 제대로 취하고 있어?」
「그것도 모르겠어. 글쎄, 아닌 것 같아. 뭐 중요한가? 아마 내가 없어도 다 잘 돌아갈 거야. 내 복제품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걸.」
그러자, 그는 내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동공의 떨림이나 시선의 처리, 그런 것으로 인간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다는 듯이 오랫동안 눈을 마주하다가 난간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다시 뱉었다.
「너는 이게 다 잘될 것 같아?」
「정확히 뭐가?」
「너는 모든 게 네 마음대로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 당장 오늘,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참혹하게 실패해도 다음 순간이나 다음 날이 되면 그것을 해결할 실마리가 보일 거라고 굳게 믿고 있잖아. 왜 확신하는 거지? 이 세상에서 확실한 건 언젠가 찾아올 끝 외엔 아무것도 없는데. 너는,」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도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아냐?」
「…….」
「그 발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네 미래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야.」
「……응.」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계단 근처에 선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격앙된 감정이 현실로 끌어내려졌다. 상대는 조금 심한 말을 했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나는 결심했다.
이 사람을 죽이자.
그때 하늘은 맑고, 바람에서는 클레마티스 향기가 나고 라디오에선 스윙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엇 하나 평소와 다름없는 순간이었다. 「아니, 나야말로. 이상한 소릴 해서 미안해.」
최대한 고통스럽게.
「잊어 줘.」
다시는 살아날 수 없도록 확실히.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으면 그들이 나를 본뜬 가짜를 만들어낼 테고,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겠지. 죄책감 따윈 갖지 않을 거다. 그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라. 네 노력도 기대도 지금부터는 전부 무의미해. 무(無)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절망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면 되는 거다.

그러니까 당신만은 나와 함께 죽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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