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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4)

Etc/Novel

2023. 8. 19.

눈을 뜨면 콘월의 해안 절벽이었다. 손에 낡은 천문학 서적이 들려 있고 멀리 2층 목조주택이 보였다. 태양이 녹아내린 것처럼 붉은 하늘 아래 갈대밭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크게 들이쉰 숨이 바닥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집으로 돌아오면, 조부모님께서 외출 준비를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20년 전, 사소한 고집 때문에 이곳에 남겠다고 말한 것을 떠올려냈다. 악몽 속에서 잃어버린 책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 없이, 나는 30분 후 6중 추돌사고에 휘말려 전소할 승용차에 올라탔다. 머릿속에서 수백만 번은 되풀이한 연극에 편안히 몸을 맡겼다.
생일에 갖고 싶은 게 있니?
자전거요.
더는 운명의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와 끝나지 않는 꿈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 관객처럼 죽음을 고대했다. 그러나, 차체는 뒤집히거나 불타오르는 일 없이 매끄럽게 움직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청소기와 각종 식료품과 넘쳐나는 가족사진을 담을 새 앨범 몇 권을 구매하고 다시 같은 차량에 탑승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그 모든 일은 내 선택과 관계없었으며 단 한 번의 정신적 외상으로 인해 남은 인생을 저당잡히는 것은
하찮은 인간이나
저지르는 발상이라는 듯이

 

 

5살 때 카나리아를 기른 적 있었는데, 잠깐 새장에서 내보냈을 때 고양이에게 물려 죽고 말았지.
나는 저택의 모든 창문을 닫고 커튼을 늘어뜨렸다. 빗소리가 점점 옅어지더니 곧 낮은 목소리밖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왜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뭐든 한순간이라고.
정말이지 위로해 주어서 고마워.
비아냥거림에 개의치 않고, 시릴은 말 없이 전등을 켰다. 빛은 식탁 중심을 둥글게 물들였다.
방은 많으니까 사양하지 마.
이를 악물거나 욕설을 하는 대신 커튼을 꽉 움켜잡았다. 작약 무늬가 수 놓인 짙은 초록색 비단이 어디서든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살인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익숙한 침묵. 눈을 감거나 어둠을 바라보면 즉각 닥쳐오는 이미지 때문에, 시선은 부산스럽게 물체와 물체 사이를 옮겨 다녔다. 8차선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긴 육교에서 추락하는 인영과 미지근한 습기밖엔 잡지 못한, 나락을 향해 뻗은 손. 파열음보다 맹렬하게 들이닥치는 화물트럭의 헤드라이트. 일순 사람이었던 실루엣이 어떻게 해체되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일 없이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자신을 믿지 않으며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폐가 타오를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단맛을 곱씹으며 달릴 뿐이었다.
카메라가 있다고 해도 이 시간이면 찍히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잘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
음……괜찮은 변호사를 소개해 줄까?
그딴 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러면 너는, 여기서 뭘 어쩌고 싶은 건데?」
TV 전원을 켰다. 음소거한 채로 뉴스 채널을 찾았다. 강풍과 폭우는 내일 오전에 멎고, 화창하고 따스한 휴일이 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흘렀다. 소파에 쓰러지듯 기댔다. 설탕을 일곱 스푼이나 넣어 혀가 아릴 정도로 단 커피를 마셨다. 시간은 비가역적으로, 절대 원하는 순간에서 멈추거나 되돌아가지 않는다. 육체와 영혼의 감각은 한동안 그 사실만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광고 몇 개가 지나고 공연 실황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유명한 가수가 슈베르트의 『마왕』을 노래했다. 병을 앓는 아들을 안고 아버지는 말을 달렸다. 그들은 암흑의 숲속에서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마왕의 감미로운 음성이 사자를 위해 속삭였다. 요람에서 잠든 그대로 6피트 아래의 흙에 묻히는 것이 만인의 삶이었다. 푸르스름한 액정 빛으로 물든 거실에 불꽃이 한 줄 가로지르고, 다음 순간 뇌성이 울렸다. 번개가, 식은땀이 맺힌 창백한 뺨을 훑는다. 도망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피의 향기는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고 그 어떤 우성도 서로 같았던 적이 없어서 몸을 숨길 곳 따위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옷을 갈아입지 않고 잠자리에 누웠다. 잿빛 버드나무가 비바람에 이리저리 쓸리며 창문을 두드렸다. 다시는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무리 저항해도 아침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절망스러웠다. 도움 따위 구하지 못하고 이곳에 돌아왔다. 이제 누구도 영원히 나를 돕지 않을 것이다. 심장은 단지 혈액을 생산하는 장기임을 지난 몇백년 동안 학습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감정 기관으로 그것을 인식한다.
참지 못하고, 외마디의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비를 피해 작은 방 안에서 맴돌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다음 날. 시릴 메이스필드는 햇빛에 메마른 빗물의 향기를 맡으며 깨어난다. 품속에서는 친구의 으깨진 두상이 굴러떨어진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지난밤 혼자 들었던 곡을 연주한다.
초인종이 울리는 동시에 악보가 끝난다.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 필독 !!